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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ie Claire - 2012. 5 ] The hand of young artisan - JnK

작지만 큰 한 땀


 

성북동에 자리한 세 남자의 가죽공예 공방은 수작업으로 제품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것만 갖추어놓은 실용적인 공간이었다. 세 사람이 모여 앉는 중앙의 커다란 작업대와 소박한 가죽 제품 진열장, 그리고 전화기가 놓인 작은 탁자 정도가 가구의 전부인 이곳에는 다른 공방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쇼룸이나 공예 강습을 위한 별도의 공간은 눈에 띄지 않았다. 처음 김세준이 ‘JnK’라는 이름을 내걸고 집에서 혼자 가죽을 자르고 이어 붙이던 가내수공업 느낌 그대로 자연스레 지금의 공방 분위기도 만들어졌다. “예전부터 사진을 좋아했어요. 카메라 케이스를 찾는 데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자급자족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여기까지 왔어요. 당시 국내에는 가죽에 염색과 조각으로 모양을 내는 투박한 멋의 아메리카 스타일이 인기였는데, 제 취향에는 가죽 본연의 질감을 살리되 스티치로 심플한 멋을 내는 일본이나 유럽 쪽의 공예 기술이 더 좋아 보였어요. 선생님도 없이 동호회 사람들과 책과 인터넷으로 조금씩 익혀나갔는데, 사람들이 알아봐주기 시작했죠. 지금은 가죽으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은 무엇이든 커스텀 메이드로 만들어요. 제가 디자인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원하는 모양과 용도를 말해주면 그것에 맞추어 완성해요. 사실 저희가 정체성이 조금 모호해요. 작품보다는 제품에 가깝지만, 모든 과정이 손으로 이루어지니까 생산이 아닌 공예에 가깝거든요.”(김세준)


 

아직 가죽공예 강습까지 하는 건 무리라고 겸손하게 이야기하지만 재단부터 옆면 마감, 바느질,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모든 공정에서 발휘되는 세 사람의 솜씨는 빈틈이 없다. 김세준이 가죽공예를 업으로 삼은 이후 중학교 동창인 지대근, 직장 동료였던 이치승이 차례로 가세했고, 이들은 곧 세 명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일하는 방식을 터득했다. “세준이 형은 제품 디자인 감각이 탁월한 대신 한번 작업에 몰두하면 완전히 기억력이 없어져요(웃음). 재단을 하다가 칼을 바로 앞에 두고도 한참을 찾는 식이죠. 반면 가죽 옆면을 손질하는 공정을 맡은 대근이 형은 아주 꼼꼼한 편이라 작업을 하면서 제작 일정이나 주문 내역 관리를 동시에 해요. 저는 주로 바느질을 하고, 전화 응대나 홍보 같은 대외 활동을 담당해요.”(이치승) “저는 작품의 질을 최대로 높이는 일에 몰두하는 데 반해 치승이는 일을 빠르게 하는 법을 고심하는 편이에요. 가끔 일하다 ‘바느질 배틀’도 해요. 그러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도 터득하게 되니 혼자일 때보다 더 발전이 빠른 것 같아요.”(김세준)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세 남자를 ‘장인’이라 표현하는 건 그들의 나이를 감안했을 때 조금 가혹한 일이겠다. 하지만 가죽을 대하는 정직한 6개의 손에는 분명 타협을 모르는 장인정신이 담겨 있다. “책임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를 표현하는 물건들 이니까, ‘최고의 퀄리티’만은 끝까지 지키고 싶어요.”

 

MC CREDIT

 

기사 원문 : http://www.marieclairekorea.com/user/issue/people/view.asp?mIdx=4656&page=1&SearchField=title&SearchWorld=